나의 이야기

계백장군과 임진왜란에 대한 소견

hankookhon 2008. 8. 13. 15:34

계백장군이 황산벌 전투에 참전한것은 충성심이었습니다.

아무리 조국이 위기라지만 부하들의 목숨 뿐 아니라

누군들 자기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까지 버리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계백장군은 기적이라도 일어나

적을 궤멸은 아닐지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혀

전쟁의욕을 상실 또는 고착시켜 백제군의 재정비 시간과

당시 왜를 통치하던 제명천황의 지원군 파병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떻든 결과는 전멸...

그래서 전멸 당했으니 개인적으로 싫다...

개인적으로야 충분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공감대 형성은 글쎄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려나요?

그리고 임진란을 본다면 초기 전쟁에 조선이 지리멸렬한 이유는

그당시 조선군의 지휘통제권에서 찾아야 할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지휘통제권은 현지 지휘관에게 있는 것이 아닌 방위군 성격이었고

전쟁 발발시 중앙에서 지휘관과 군대를 선발 전선투입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왕권강화와 쿠데타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과 군대를 내려보낼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진출이 파죽지세였었던 것입니다.

웃기는 건 적의 침략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지도를 만드는자 사형, 큰 도로를 내는것 절대 불가 그랬습니다.

적이 우리 내부 지리를 모르게 하고 진출을 막겠다는 의도였지요.

각설하고 만약 그 당시 지휘관과 군대가 현지 주둔 형태였다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강력한 화포와 조총보다 긴 화살의 사거리가 일본군이 그리 쉽게 쳐들어 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로 당시 의병장중에 매복작전으로 일본군에게 화살로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조총 사거리에 들기전 퇴각 작전을 사용했던 분들이 계십니다.

아무튼 우리의 화력이 결코 일본에 절대적으로 우후죽순식 진출을 허용할 만한 약한 화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과 원균의 공과는 정치적인 문제로 봐야합니다.

명수군 도독 진린이 자국 황제에게 이순신은 유능한 장수나

전쟁이 끝나면 필시 선조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므로

너무 아까운 장수라 기용을 상주하는 장계를 올리듯

선조는 이순신장군에게 너무 많은 피로와 위협과 질투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소환해 고문...

백의종군으로 존재 상실을 꽤했고 종전 후 필시 장군의 목숨을 앗았을 겁니다.

당시 왕의 입장에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왕은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고

장군 홀로 백전백승 곡창지대를 확보하고 백성들에게 우러러 추앙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으니...

그래서 원균의 공과를 이순신장군과 같은 반열에 올려

장군 홀로 성웅이 되는 것을 보아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원균을 본다면 비겁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원균과

이순신장군이 어떻게 같은 반열에 서있게 됐는지 아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