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이승만과 임시정부

hankookhon 2008. 8. 13. 12:55

이승만 대통령이 임정과 거리가 있었던 것은 대통령으로 임정을 지키지 않고 미국에만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부재의 정부는 있으나 마나한 정부라고 당시 각료들이 임정으로 돌아오기를 수차례나 권유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번번이 무시하다가 마지못해 한번 왔다 곧 가버립니다.

그래서 임정요인들에게 편함과 안일함만을 쫏는 기회주의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사실 미국에서의 독립운동도 중요했지요.

독립자금 모금도 미국내에서 많이 이뤄졌구요.

그러나 당시 임정에서 미국정부 요로에 안면을 갖고있는 이승만이 대통령직을 적절히 수행했다면

국내 침공작전이나 독립군과 미군의 양동작전이 더 일찍 이뤄질 수도 있었을 지도 모르고

미국과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더 쉽게 얻어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복 후 정권에 목메느라 임정을 무시하고 친일파를 앞세우는 그의 처사가

후세에 비난을 받는 것이고요.

그것은 이유가 어떻든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지요.

더우기 김구선생 암살 후

안두희에게 헌병대장 김창룡을 붙여 뒤를 봐주게 하고

안두희에게 장한일을 했다고 다독이는 등

객관적인 살해 동기를 스스로 부여합니다.

그리고 안두희의 복직을 용인 하는 등 도저히 같이 독립운동을 했었던 동지라고 믿기지 않을...

아니 국가 수반으로의 자질을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그 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최후의 선택으로

그나마 대한민국이 있게한 긍정적 평가가 잇습니다만

인물난 때문에 친일파를 고용 했다면 그들에게 반성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새로운 조국에 봉사할 명분을 만들어 줬어야 했는데

아무런 조치 없이 발탁된 친일파들에 의해

독립운동가들이 광복된 조국에서 또 다시 옥고를 치르고 고문 당하는

웃지못할 일들이 벌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정권 연장을 위한 독재와 비리...

당시 한강에서 낚시중인 이승만이 방귀를 뀌니까

내무부 장관이었던 최인규가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아부 했다는

우스개소리성 진실이 퍼질 정도로 이승만은 대통령이 아닌 국왕의 서열이었습니다.

당시 부통령 출마를 했던 이기붕과 그 부인 박마리아여사는

늘 이승만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국모님이라 호칭했던 그러한 일련의 사소한 예만 보더라도

그 이하 자유당 정권의 상황이 어땠을 것인지 짐작이 갈것입니다.

이 후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고 주검으로 귀국할때

순진한 국민은 애증의 슬픔으로 맞이합니다.

윗물은 맑은데 아랫물만 더러웠다란 말은 냉정한 얘기지만 자격이 없다란 말입니다.

즉, 어떤 위치에 오를려면 아랫사람들을 지휘 통솔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이 아닌이상 베일에 가려 있을 사람은 대통령이 되면 안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결과론이지만 누구든 욕심을 부리다가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됩니다.

이를 역사가 증명하지요. 역사는 돌고 돈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