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려와 조선의 군사력

hankookhon 2008. 8. 13. 16:05

고려의 군사력이 가장 강성했을때는 초기때 뿐입니다.

이 후 정중부 난 후 이의방, 이의민 등등 수많은 집권 무부들이 자신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사병 제도를 두어 서로를 죽이는 세력전을 펼쳐 오랜동안 군사정치를 실현 합니다.

왕은 허수아비에 왕비는 지들이 들이고 싶은데로 들였다가 내치는 등

그러다 고려 후기에 중앙집권 통치가 가능 해지나 왕들의 사치와 무능으로 정국은 어수선 해지며

구 귀족들과 새로 과거에 급제한 신진세력의 충돌, 원의 압력에 의한 왕권 약화,

홍건적과 외구의 침입으로 백성들의 곤궁 등등,

이때 명나라가 쌍성총관부 관할지역을 영유하기 위해 철령위 설치를 통고하자,

고려에서 최영이 중심이 되어 명의 대 고려 전진기지인 요동을 정벌하기로 하여

조민과 이성계를 좌, 우 군도통사로 삼아 요동정벌에 나서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의 멸망을 가져오게 됩니다.

이 후 조선의 역사는 쿠데타의 오명으로 초기 왕들의 골육상쟁이 이어집니다...

임진란은 어디에선가 언급 했지만 초기 전쟁에 조선이 지리멸렬한 이유는

그당시 조선군의 지휘통제권에서 찾아야 할것입니다.

당시 조선의 지휘통제권은 현지 지휘관에게 있는 것이 아닌 방위군 성격이었고

전쟁 발발시 중앙에서 지휘관과 군대를 선발 전선투입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왕권강화와 쿠데타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휘관과 군대를 내려보낼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일본의 진출이 파죽지세였었던 것입니다.

웃기는 건 적의 침략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지도를 만드는자 사형, 큰 도로를 내는것 절대 불가 그랬습니다.

적이 우리 내부 지리를 모르게 하고 진출을 막겠다는 의도였지요.

각설하고 만약 그 당시 지휘관과 군대가 현지 주둔 형태였다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강력한 화포와 조총보다 긴 화살의 사거리가 일본군이 그리 쉽게 쳐들어 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예로 당시 의병장중에 매복작전으로 일본군에게 화살로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조총 사거리에 들기전 퇴각 작전을 사용했던 분들이 계십니다.

아무튼 우리의 화력이 결코 일본에 절대적으로 우후죽순식 진출을 허용할 만한 약한 화력이 아니었습니다.

읔~광고주가 만나자네요 오늘은 여기까지~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