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연비 경쟁이 뜨겁다. 자동차 유지비와 직결돼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 수입차·국산차 구분없이 연비가 높은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연비가 좋은 차들은 수입·국산 모두 불티나듯 팔려나가고 있다. 현대자동차(005380)등 국내 업체의 차량 연비는 수입차보다 20~30%가량 낮은 편이다. 정부의 연비 관련 고무줄 기준이 엔진 등 차량 제작사의 핵심 부품 경쟁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폴크스바겐 파사트 8세대 모습/폴크스바겐 제공
↑ 렉서스 CT200h 모습/조선일보 DB
↑ 현대차 그랜저 디젤 모습/조선일보 DB
↑ BMW 520d 모습/조선일보 DB
↑ 국토부와 산업부의 연비 과잉 조사 결과 발표 모습/강도원 기자
◆ 獨 리터당 24㎞ 디젤차도 나와…수입차보다 20~30% 연비 낮은 국산차
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 4일 독일 포츠담에 있는 디자인센터에서 대표 중형 세단 '파사트'의 8세대 신형 모델을 사전 공개했다. 8세대 파사트의 디젤 모델 연비는 유럽 기준으로 L당 24.3㎞ 수준으로 전해졌다. 폴크스바겐은 정확한 연비는 10월 파리모터쇼에서 공개할 방침인데 L당 30㎞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럽 연비는 국내 기준보다 20~30%가량 높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L당 20㎞에 가까운 고연비 차량이다.
폴크스바겐의 또 다른 모델인 골프 1.6 TDI의 복합연비는 국내 기준으로 리터당 18.9㎞다. 최근 판매를 시작한 골프 GTD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6.1㎞다.
독일 프리미엄 세단들 역시 고연비 차로 잘 알려져 있다. BMW의 대표 모델인 520d의 복합 공인연비는 리터당 16.9㎞다. 320d 모델의 연비는 리터당 18.5㎞다. 올해 상반기 출시된 BMW의 '미니 쿠퍼 D' 복합연비는 19.4㎞다. 고속도로에서 달릴 경우 1리터에 최고 22.7㎞를 갈수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소형차인 A클래스(복합 18㎞/L)나 준중형 B클래스(15.7㎞/L), 중형차인 CLS클래스(15.6㎞/L) 역시 고연비차로 잘 알려져 있다. 준대형차 E220 CDI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6.3㎞다.
미국차의 연비도 크게 개선됐다. 포드의 퓨전 하이브리드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9.4㎞다. 링컨 MKX는 1리터를 넣고 18㎞를 달린다.
일본 하이브리드 차량의 고연비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도요타 프리우스의 공인연비는 리터당 21㎞다. 렉서스의 뉴 CT200h는 18.1㎞, 렉서스 ES300h는 16.4㎞를 기록했다. 또 다른 일본차인 혼다의 인사이트(15.2㎞)도 연비가 높은 편이다.
최근 들어 국산차들도 디젤 세단을 중심으로 고연비 차량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독일 디젤 세단보다 연비가 20~30%가량 나쁜 편이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출시한 그랜저 디젤 2.2 모델의 복합연비는 리터당 13.8~14㎞다. 기존 그랜저 2.4 가솔린 모델(11.3㎞)과 비교했을 때 연비는 개선됐지만, 독일 세단과 비교했을 때는 연비가 낮은 편이다.
르노삼성차는 최근 리터당 16.5㎞를 갈 수 있는 SM5 디젤 모델을 선보였다. 기존 SM5(12.6㎞)보다 약 30% 가까이 연비가 개선됐다.
◆ 연비 좋은차, 판매도 잘된다
연비가 좋은 차들은 공통으로 판매가 잘된다. BMW의 5시리즈 모델이 대표적이다. BMW 5시리즈는 올해 상반기 수입차 중 유일하게 1만대 이상(1만468대) 팔렸다. 6월 BMW의 디젤 세단 520d는 총 711대 팔려 월간 수입차 판매 1위를 기록했다.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올해 상반기 수입차 모델별 판매량 상위 5위(BMW 5시리즈, 벤츠 E클래스, BMW 3시리즈, 아우디 A6) 모두 연비가 모델별로 최소 리터당 15㎞ 이상을 기록하는 차량 들이다.
국산차 중에서는 르노삼성의 소형 SUV 모델 QM3가 지난해 11월 7분 만에 1000대가 모두 팔렸다. QM3 1.5 디젤모델의 연비는 리터당 18.5㎞다. 한국GM 쉐보레의 말리부 디젤 2014년형 모델은 올해 3월 판매 시작 이후 45일 만에 약 1000대 가까운 상반기 출시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현대차의 그랜저 디젤은 사전 계약 20일 만에 1800대를 기록했다. SM5 디젤 역시 사전 계약이 1500대를 돌파했다.
◆ "정부의 연비 고무줄 기준이 엔진 등 핵심부품 경쟁력 약화 야기"
자동차 연비를 결정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엔진과 변속기인 파워트레인 기술력, 차량 경량화 정도가 연비와 직접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김종훈 자동차 품질연합 대표는 "디젤 엔진의 경우 국내 제작사들은 커먼레일이나 인젝터 등 핵심 부분을 독일 보쉬 등에서 수입해 쓴다"며 "국내 엔진 부품과 독일 부품 간의 적합성이 떨어지다 보니 연비 등이 개선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R&D를 통해 투자하기보다는 부품을 사서 쓰는 게 가격이 싸기 때문에 개발에 나서지 않아 이런 연비 경쟁력이 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자동차 제작사들은 알루미늄 등 신소재를 사용해 차체는 가벼워지면서 강성은 높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차들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현대차의 신형 제네시스는 구형보다 무게가 135㎏ 늘면서 3.3L 엔진의 경우 연비가 9.0~9.4㎞/L, 3.8L급은 9.0㎞/L로 구형보다 오히려 최대 0.6㎞/L 낮아졌다.
국내 차량 제작사들의 연비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 정부의 연비 관련 기준이 고무줄처럼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관련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기술 개발을 유도했어야 한다는 것. 실제로 승용차 사후 연비 관련 검증을 담당했던 산업통상자원부는 2003년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제작사들이 신고한 연비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적이 없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뒤늦게 디젤 세단 경쟁에 발을 들인 것 자체가 연비와 관련해 크게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연비가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