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故신영복, 20년 간 감옥에서 금처럼 제련한 그의 말과 글

hankookhon 2016. 1. 16. 12:03

故신영복, 20년 간 감옥에서 금처럼 제련한 그의 말과 글

신영복의 인생과 작품 세계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스물일곱의 꽃다운 청춘이 감옥에서 20년을 보낸 후 중년이 되어서 나왔다. 20년의 긴 세월이라 거쳐간 형무소도 안양, 대전, 전주등 전국 곳곳이었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좌절하고 세상을 탓할 법하지만 고 신영복 교수에게는 금이 불로 정련되는 사색과 반성의 시간이었다.

15일 75세를 일기로 타계한 고 신영복 교수는 진보적인 지식인을 넘어서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었다.

육군 중위로,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이었던 그는1968년 8월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후 '간첩'이 되었다. 대학의 독서회와 연합서클 세미나를 지도한 이력이 '반국가 단체 구성죄'에 해당한다며 1심과 2심에서 청천벽력같은 사형이 선고됐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죄교수©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죄교수©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우여곡절 끝에 무기형으로 확정된 그는 그로부터 20년 20일 동안 신영복이 아닌 가슴에 붙인 번호로 불리는 수인(囚人)이었다. 하지만 생전에 신영복 교수는 그 20년을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표현했다. 감옥은 그에게 ‘사회학’과 ‘역사학’과 ‘인간학’을 가르친 교실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 대로 기나긴 수형생활 동안 그는 더 성숙해지고 깊어져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1988)에는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이 가득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산에는 그동안 흠씬 물 머금은 수목들이 무섭게 성장할 태세로 여름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름을 다만 더위로서만 받아들이기 쉬운 저희들은 먼저 저 수목들의 청청한 태세를 배워야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기체후 만강하시길 빌며 이만 각필합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물먹은 수목처럼)

부모님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서 신영복은 창밖으로 보이는 여름 나무들에게 닥칠 더위나 여름볕을 고통이나 시련으로만 보지 않고 '성장할 기회'로 보는 성숙한 눈을 보여준다.

"개인과 개인의 아득한 거리,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을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벽, 인간관계가 대안(對岸)의 구경꾼들간의 관계로 싸늘히 식어버린 계절……. 담장과 울타리. 공장의 사유, 지구의 사유, 불행의 사유, 출세의 사유, 숟갈의 사유……. 개미나 꿀벌의 모두살이에는 없는 것이다. 신발이 바뀐 줄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온 밤길의 기억을 나는 갖고 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독방에 앉아서)

다른 이들과 말한마디 나누기 힘든 작은 독방에서조차 그는 개인과 개인이 섬처럼 존재하게 된 사회에 대해 우려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는 공동체의 삶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당신의 장탄식이 들리는 듯 합니다. 무수한 상품의 더미와 그 상품들이 만들어내는 미학에 매몰된 채 우리는 다만 껍데기로 만나고 있을 뿐이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납니다. 정작 둬려운 것은 그러한 껍데기를 양산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을 잊고 있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나무야 나무야' 중 청년들아 나를 딛고 오르거라)

'나무야 나무야'(1996)에서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가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도록 했던 고향의 얼음골을 찾아간 후의 소회를 이렇게 쓴다. 제자를 위해 자신을 바친 유의태처럼 청년들에게는 '자신을 딛고 오르라'고 말한다.

지난해 5월 투병중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의 변화는 쉽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며 희망과 인내의 메시지를 전했다.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서, 가시적 성과나 목표 달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과정 자체를 아름답고 자부심 있게, 즐거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고통속에서 오랫동안 단련된 순금(純金)의 말을 전했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의 생전 깅의모습© News1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의 생전강의모습© New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