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올랐다,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경향신문 | 안산 | 글 이로사·사진 정지윤 기자 |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시화호 근처의 바다와 갯벌이 갖가지 색깔로 아름답다. 이 일대는 산이 없어 비행하기 좋다. 갯벌이 넓어서 유사시 불시착도 가능해 초창기엔 비행인이 많이 모여들었다.
활주로엔 레이밴 선글라스를 끼고 위아래가 붙은 비행복을 입은 조종사들이 그림처럼 서 있다. 비행기로 세계 첫 대서양 논스톱 횡단에 성공한 미육군 항공단 소속의 존 매크레디 대위가 처음 썼던 그 선글라스가 처음으로 적재적소에 자리한 것을 목격한 기분. 활주로에 선 이들은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태양빛이 강렬했고, 리투아니아에서 온 곡예비행팀이 첫 시험비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 시간째 활주로 곁에 서서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가만히 하늘만 보고 있어도 재미있는데, 기다리기 지루하시죠?" 레이밴식 선글라스를 낀 조종사가 말을 건넸다. 선글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비행기를 타러 갔다. 경기도 안산시 시화호 인근 안산 스피드웨이. 자동차 서킷용으로 만들어진 스피드웨이 부지에 750m의 활주로가 펼쳐져 있다. 그 위에 다양한 기종의 경량비행기들이 늘어서 있다. 곡예비행팀의 비행기 3대는 리투아니아에서 온 것으로, 모두 분해해 화물칸에 실어와 한국에서 다시 조립했다고 한다. 비행기를 비행기에 실어서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거기서부터 타고 오려면 몇 번은 착륙해서 기름 넣으면서 와야 할 걸."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드디어 맨눈으로 좇기도 힘든 시험용 곡예비행이 끝이 났다. 그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행기에서 펄쩍 뛰어내려 손으로 비행기를 밀어 주차시킨다. 맨손으로 밀어도 밀리는, 이것은 250~300㎏짜리 경비행기다.
이윽고 차례가 왔다. 저쪽에 서 있는 빨간 비행기다. 작은 바퀴 세 개가 앙증맞다. 비가 그치고 파랗게 갠 날이었다. 누군가는 "비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라고 했는데, 함께 탄 18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 이성규 교관(46·서해항공)은 "청명한 날씨의 뭉게구름은 요동치는 기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야는 좋은데 승차감은 떨어질 수 있단 얘기다.
경비행기 안은 생각보다 훨씬 좁다. 가방 놓을 자리가 없으니 두고 가란다. 딱 두 사람만 탈 수 있고, 조종사와 어깨를 맞대고 앉아야 할 정도. 좁은 둥지에 들어앉은 새가 된 기분이다. 안전벨트를 매고, 헤드폰을 썼다. 귀를 먹먹하게 했던 프로펠러 소리가 멀어진다. 대신 헤드폰을 통해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거기에 달린 마이크로만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이제 정말 경비행기를 탔구나 싶다. 눈앞엔 속도계, 고도계 등 각종 계기판과 스로틀(파워조절 장치) 등 조절장치들. 언뜻 조악해 보이는 이 장치들로 250㎏짜리 고철이 하늘을 난다.
투명한 반구 모양의 캐노피가 닫히고, 귓속으로 생소한 용어들이 뭉개어져 들린다. "클리어 프롭(Clear Prop)" "#$% & *@!r & *$ & " "%$#* & %·#@"…. 들리는 건 '클리어 프롭'뿐. 프로펠러 시동을 걸기 전에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등 안전함을 확인하는 교신 용어다. 보통 내 이름을 이야기하고, 내 위치를 이야기하고, 원하는 걸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이륙할 때는 이런 교신이 오갔다(고 한다). "안산 그라운드 S2154 레디 포 테이크 오프(Ready for take off), 런웨이 35."(조종사) "S2154 클리어드 포 테이크 오프, 런웨이 35."(관제탑) 한국말로 하면 이렇다. "S2154(비행기명) 활주로 33에서 이륙 준비완료." "활주로 33 이륙 주변 이상 없음." 정확한 교신을 위해 각 알파벳엔 이름이 붙어 있다. S는 '시에라', HLC는 '호텔' '리마' '찰리' 하는 식이다.
혼란 속에 비행기는 땅에서 발을 뗐다. 최대 출력을 주면서 소음과 진동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돌연 고요히 중력을 거스르는 순간이 온다. 인간이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순간의 짜릿함이 많은 비행인들을 사로잡는다.
비행기는 순식간에 200m 상공에 올랐다. 탑승한 기종은 순항 속도가 시속 150㎞ 정도. 하늘에 오르니 평화롭다. 속도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로 시화호 갯벌과 멀리 하늘색 지붕의 시화호 공단, 인천 앞바다, 아파트로 뒤덮인 도시까지 한눈에 천천히 흐른다. 지금은 둘이지만 절대적인 고독 속에 홀로 하늘에 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성규 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에 떠 있으면 모든 게 발아래 작게 내려다보이지요. 나 자신이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존재가 아닌데 너무 아옹다옹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비행할 땐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옹다옹하는 그런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마음이 넓어지고."
늘 평화로운 건 아니다. 기체가 가벼운 경비행기는 비, 안개, 바람 등에 모두 취약하다. 이날은 날은 맑았지만 바람이 초속 3~4m 정도로 불었다. 기류가 좋은 날은 아니었다. 초속 6m 이상이면 위험해 웬만하면 비행하지 않는다. 아직 탑승하기 전 활주로에서 봤을 때, 이륙하는 다른 비행기들의 기체가 바람에 다소 휘청대는 게 보였다. 하늘에서도 순항할 땐 괜찮았지만, 방향을 바꿀 때는 바람에 기체가 요동쳤다. 이 교관 말로는 이른 아침이나 오후 늦게, 늦봄과 늦가을에 기류가 안정적이다. 오후 대여섯시가 되면 바람도 잦아들 거란다. 뒤로 사진기자가 탄 비행기와 교신이 오간다. 교신 뒤에는 항상 말로만 듣던 "롸저(Roger·알아들었다)"라는 응답이 이어진다. 좀 더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나아가 달라는 주문이다. 사진 촬영을 위해 비행기는 몇 번이고 같은 지점을 지난다. 덕분에 급선회를 몇 차례 반복해야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고도에 몸이 적응하지 못한다. 이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 머릿속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 교관이 발아래 공기구멍을 열어 주고 크게 심호흡을 하라고 한다. 그리고 "착륙해야겠다"는 교신을 전한 뒤, 활주로 쪽으로 조종간을 돌리면서 말한다. "인간은 지상에서 늘 살아와서 올라오면 불안해지는 거거든요."
멀리 보였던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몸은 지상에서 곧 안정을 찾는다. 다시 올라가면 조금 적응이 되어 있을까. 바람이 잦아들 오후 대여섯시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다시 활주로에 섰다.
▲ 여행 길잡이
● 전국에 20여개의 비행클럽이 있다. 이곳에서 경비행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 홈페이지(www.sportaviation.or.kr)에 공인교육단체 목록이 나와 있다. 가장 많은 비행기를 보유한 클럽은 경기도 화성의 예모항공 비행클럽(club.yemoair.com). 조종관과 함께 10~15분 비행장 주변을 비행하는 '데모 비행'이 1인당 10만원 정도. 시간 연장 등은 가능하다. 예모항공 (031)357-7610 서해항공 (031)482-4966
● 5~10일 경기도 안산시 경기 테크노파크 맞은편 스피드웨이 부지에서 열리는 제3회 경기국제항공전에서는 경비행기 무료 탑승이 가능하다. 미리 사연을 적어 보낸 신청자 중 500여명을 뽑아 탑승 기회를 준다. 이 밖에 항공전에선 영국, 리투아니아가 참가하는 글로벌 에어쇼 팀,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등 에어쇼와 항공우주 체험, 항공기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입장권 성인 4000원, 아동·청소년 2500원. (031)407-6655
● 경비행기 면허는 17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딸 수 있다. 필기시험과 5시간 단독비행을 포함한 20시간의 비행교육을 거쳐야 한다. 직장인의 경우 3~5개월 정도 소요되고, 평균 4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앞서 언급한 공인교육단체에서 교육과 시험이 동시에 이뤄진다. 최근엔 자가 경비행기를 소유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가격은 천차만별. 5000만~2억원 정도.
< 안산 | 글 이로사·사진 정지윤 기자 ro@kyunghyang.com >
경비행기를 타러 갔다. 경기도 안산시 시화호 인근 안산 스피드웨이. 자동차 서킷용으로 만들어진 스피드웨이 부지에 750m의 활주로가 펼쳐져 있다. 그 위에 다양한 기종의 경량비행기들이 늘어서 있다. 곡예비행팀의 비행기 3대는 리투아니아에서 온 것으로, 모두 분해해 화물칸에 실어와 한국에서 다시 조립했다고 한다. 비행기를 비행기에 실어서 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 "거기서부터 타고 오려면 몇 번은 착륙해서 기름 넣으면서 와야 할 걸."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한다. 드디어 맨눈으로 좇기도 힘든 시험용 곡예비행이 끝이 났다. 그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행기에서 펄쩍 뛰어내려 손으로 비행기를 밀어 주차시킨다. 맨손으로 밀어도 밀리는, 이것은 250~300㎏짜리 경비행기다.
이윽고 차례가 왔다. 저쪽에 서 있는 빨간 비행기다. 작은 바퀴 세 개가 앙증맞다. 비가 그치고 파랗게 갠 날이었다. 누군가는 "비행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라고 했는데, 함께 탄 18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 이성규 교관(46·서해항공)은 "청명한 날씨의 뭉게구름은 요동치는 기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시야는 좋은데 승차감은 떨어질 수 있단 얘기다.
경비행기 안은 생각보다 훨씬 좁다. 가방 놓을 자리가 없으니 두고 가란다. 딱 두 사람만 탈 수 있고, 조종사와 어깨를 맞대고 앉아야 할 정도. 좁은 둥지에 들어앉은 새가 된 기분이다. 안전벨트를 매고, 헤드폰을 썼다. 귀를 먹먹하게 했던 프로펠러 소리가 멀어진다. 대신 헤드폰을 통해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거기에 달린 마이크로만 옆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 이제 정말 경비행기를 탔구나 싶다. 눈앞엔 속도계, 고도계 등 각종 계기판과 스로틀(파워조절 장치) 등 조절장치들. 언뜻 조악해 보이는 이 장치들로 250㎏짜리 고철이 하늘을 난다.
혼란 속에 비행기는 땅에서 발을 뗐다. 최대 출력을 주면서 소음과 진동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 돌연 고요히 중력을 거스르는 순간이 온다. 인간이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순간의 짜릿함이 많은 비행인들을 사로잡는다.
비행기는 순식간에 200m 상공에 올랐다. 탑승한 기종은 순항 속도가 시속 150㎞ 정도. 하늘에 오르니 평화롭다. 속도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로 시화호 갯벌과 멀리 하늘색 지붕의 시화호 공단, 인천 앞바다, 아파트로 뒤덮인 도시까지 한눈에 천천히 흐른다. 지금은 둘이지만 절대적인 고독 속에 홀로 하늘에 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성규 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하늘에 떠 있으면 모든 게 발아래 작게 내려다보이지요. 나 자신이 세상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존재가 아닌데 너무 아옹다옹 살고 있는 게 아닌가, 비행할 땐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옹다옹하는 그런 마음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마음이 넓어지고."
멀리 보였던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고, 몸은 지상에서 곧 안정을 찾는다. 다시 올라가면 조금 적응이 되어 있을까. 바람이 잦아들 오후 대여섯시까지 기다릴 요량으로 다시 활주로에 섰다.
▲ 여행 길잡이
● 전국에 20여개의 비행클럽이 있다. 이곳에서 경비행기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대한스포츠항공협회 홈페이지(www.sportaviation.or.kr)에 공인교육단체 목록이 나와 있다. 가장 많은 비행기를 보유한 클럽은 경기도 화성의 예모항공 비행클럽(club.yemoair.com). 조종관과 함께 10~15분 비행장 주변을 비행하는 '데모 비행'이 1인당 10만원 정도. 시간 연장 등은 가능하다. 예모항공 (031)357-7610 서해항공 (031)482-4966
● 5~10일 경기도 안산시 경기 테크노파크 맞은편 스피드웨이 부지에서 열리는 제3회 경기국제항공전에서는 경비행기 무료 탑승이 가능하다. 미리 사연을 적어 보낸 신청자 중 500여명을 뽑아 탑승 기회를 준다. 이 밖에 항공전에선 영국, 리투아니아가 참가하는 글로벌 에어쇼 팀,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등 에어쇼와 항공우주 체험, 항공기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입장권 성인 4000원, 아동·청소년 2500원. (031)407-6655
● 경비행기 면허는 17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딸 수 있다. 필기시험과 5시간 단독비행을 포함한 20시간의 비행교육을 거쳐야 한다. 직장인의 경우 3~5개월 정도 소요되고, 평균 4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앞서 언급한 공인교육단체에서 교육과 시험이 동시에 이뤄진다. 최근엔 자가 경비행기를 소유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가격은 천차만별. 5000만~2억원 정도.
< 안산 | 글 이로사·사진 정지윤 기자 r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