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날다, 경비행기… 날았다, 파일럿의 꿈
동호회 1만9000명, 조종사 2000명 시대… 서해안·낙동강 루트 따라 '비행 천국'
조선일보 | 안산 |
땅은 225㎏의 작은 기체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소형 활주로에서 100여m를 달리자 바퀴가 지면에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듯 기체가 양쪽으로 두어 차례 기우뚱거리더니 힘겹게 중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순간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묘한 해방감이 찾아왔다. 계기판의 바늘은 지상 200m, 시속 150㎞를 가리키고 있었다. 몽롱한 '비현실감'이 채 가시기도 전 창 아래에는 시화호 갯벌이 펼쳐졌고, 서해 바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섰다. 지상의 모든 것이 작고 비루하게 느껴졌다.
↑ [조선일보]김대형씨의 ‘애마’인 CH-601 옆으로 다른 두 대의 비행기가 접근하고 있다. 베테랑 조종사들은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깝게 붙일 수 있지만, 평소에는 철저히 ‘준법 비행’ 한다. / 이명원 기자
↑ [조선일보]지난 17일 오후 CH-601 경비행기 세 대가 경기도 안산시의 한 아파트 단지 옆을 편대를 이뤄 비행하고 있다. 미국 제니스사(Zenith Aircraft)가 만든 이 비행기는 날개 길이 7m, 전장 5m에 최대 시속 257㎞, 최장 5시간 30분간 비행할 수 있다. 같은 고도를 날고 있는 다른 기종 경비행기 CH-701 기내에서 촬영했다.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지난 17일 오후 안산의 '경기테크노파크' 맞은편 스피드웨이 부지. 2인승의 CH601, CH701, 뱀파이어 기종 등 7대의 항공기가 늘어서 있는 가운데 쉴 새 없이 체험 비행이나 강습을 위해 항공기들이 뜨고 내렸다. 동대문에서 의류도매사업을 하는 김대형(44) 사장은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는다. '애마'(愛馬)인 남색의 CH-601을 몰고 시화호와 서해안 상공을 비행하는 것은 주말의 빼놓을 수 없는 일과. 가끔 아들을 태우고 날기도 한다. 김 사장은 "처음 시작하는 것이 어렵지, 한두 번 비행해보면 중독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홍예지( 서울 신도림동)씨는 "스튜어디스로 취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조종사 자격증에 도전했는데, 연습을 할수록 비행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초보 조종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안개와 구름과 어둠이다. 양회곤 초경량항공협회 사무국장은 "안산에서 안면도로 비행을 나섰다가 해무(海霧)에 갇혀 같은 곳만 빙빙 도는 동료를 본 적이 있다"며 "구름이나 안갯속에 갇히면 무조건 고도를 높여서 상승해야 하는데, 당황하면 그것도 힘들다"고 했다. 김대형씨는 "몇년 전 안면도 상공까지 날아가 서해안의 낙조를 즐기다가 복귀하는 길을 잃고 어둠 속에서 헤매기도 했다"며 "마침 휴대폰이 있어 지상과 통화가 연결돼 길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짧은 비행'을 위해 이들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다. 대부분 "왜 하늘로 날아오르냐?"고 물으면 "어린 시절 파일럿의 꿈을 지금에야 실현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마치 '소년'들 같았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한 대에 8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항공기를 구입하고, 20시간 비행에 400만원의 강습비를 기꺼이 지급한다.
요즘 안산에서는 다음 달 5일로 다가온 경기도 국제항공전에 참가하는 조종사들이 편대비행을 연습하고 있다. 편대비행은 최소 500~1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만 구사할 수 있다. "시속 150㎞로 달리는 자동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리며 서로 물건을 건네받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비행기는 거기에 높낮이까지 더해진 3차원 기술이에요."
공군 정비사 출신으로 1000시간 이상 비행 경력을 가진 김완호 비행팀장은 "일반적으로는 두 대의 비행기가 근접해서 날아가는 것 자체를 사고(事故)로 본다"며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편대비행 취재를 위한 기자의 동승 요구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양회곤 사무국장은 "항공산업 선진국들을 보면 작은 경비행기에서부터 산업의 기초를 닦아왔다"며 "3회째를 맞는 올해 국제항공전에는 처음으로 전국의 자동차·기계 부품 사업자들을 초청해 산업박람회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