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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갯바람·도요새 길벗 삼아 걷는 맛… “절묘하구나”

hankookhon 2011. 4. 17. 15:54

물안개·갯바람·도요새 길벗 삼아 걷는 맛… “절묘하구나”

고군산군도 25㎞ 구불길

문화일보 | 박경일기자 |

 




# 전기차, 자전거, 걷기… 녹색이 된 섬

선유도로 대표되는 이른바 '고군산군도'를 말하자면 '군산(群山)'이란 이름의 내역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지금은 전북 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를 군산이라 부르지만, 애초에 군산이란 선유도를 위시한 40개의 유·무인도를 이르는 말이었다.

예부터 섬마다 기암괴석이 불끈 솟아난 선유도 일대를 '산(山)이 무리(群)지어 있다' 해서 군산이라 불렀다. 실제로 선유도에 내려 보면 사방으로 둘러친 섬들이 산의 무리를 이루고 있다.

↑ 선유도와 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모두 다리로 연결돼 있어 도보로 바다를 건너가면서 4개 섬을 속속들이 다 돌아볼 수 있다. 짙은 해무가 걷힌 뒤 옅은 안개 속에서 도보여행에 나선 이들이 장자도에서 대장도로 넘어가는 시멘트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섬이 아닌 육지를 군산이라 부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때는 고려말 조선초.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선유도에 수군기지가 들어섰다. 군산에 들어선 수군진이니 이름하여 '군산진'이다. 그러나 약삭빠른 왜구들은 군산진의 방어를 피해 내륙으로 침략해 들어갔고, 이에 조정에서는 군산진을 지금의 군산 땅인 내륙으로 옮겼다. 이런 연유로 내륙의 땅이 자연스레 군산이란 이름을 얻게 됐고, 수군진이 떠나간 선유도 일대 섬은 '옛 군산'이란 뜻으로 '옛 고(古)'자를 붙여 '고군산'이라 불리게 됐다.

고군산군도는 섬의 무리지은 산들이 바다를 막아 마치 호수와도 같다. 조선 정조때 전라감사가 올린 보고서(장계)를 보자. "만경의 고군산은 여러 섬들이 둘러싸고 있어 가운데 큰 호수가 펼쳐져 있습니다."

선유도 일대의 풍경은 그때의 글 그대로다. 보고서에서 이야기한 '큰 호수'는 선유도와 무녀도 사이의 진또포구 앞을 말함이다. 군산외항에서 여객선을 타면 닿는 항구를 끼고 있는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가 바로 그곳이다.

선유도는 고군산군도 일대 여정의 중심이다. 섬이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와 연륙교로 연결돼 있어 주민이나 관광객들은 선유도로 들고난다. 보통 서·남해의 자그마한 섬에도 차를 싣고 운항하는 이른바 '철부선'이 운항되고 있지만, 선유도에는 지금껏 단 한번도 철부선이 정기적으로 뜬 적이 없다. 좁은 도로 사정 때문에 차량이 들어오면 도로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운행하는 차량이나 소형버스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 봐야 몇 대 안 된다.

대신 섬 안에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기 위한 전동카트가 운행되고 있다. 한때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탈것들이 과속을 일삼고 우르릉탕탕거리며 섬을 돌아다녔지만, 근래 3년 사이에 죄다 골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전동카트로 대체됐다. 선유도 일대의 섬 주민들이 관광안내나 대여를 위해 들여온 전동카트가 140대에 이르니 여객선이 부두에 닿을 때는 그것만으로도 혼잡스럽긴 하지만, 전동카트를 들여온 이후 섬은 한층 조용해졌다. 관광객들은 카트를 빌려 고즈넉한 섬을 돌아봤고, 젊은이들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을 누볐다.

애초에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선유도는 전기와 자전거란 친환경 교통수단을 갖게 된 셈이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른바 '녹색관광'에 한발짝 다가서게 됐다. 앞으로 친환경과 녹색관광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본다면, 그런 모습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섬이 바로 고군산군도인 것이다.

# 고군산군도의 최고봉 대봉에 올라서다

고군산군도에 걷기 코스까지 개척됐다. 군산시가 놓고 있는 8번째 도보여행 코스인 '구불 8길'이다.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의 해안길과 봉우리를 잇는 전장 25㎞ 남짓의 호젓한 코스다. 4개의 섬을 건너다니며 바다를 끼고 마을을 지나기도 하고, 바닷가 언덕을 지나기도 한다. 섬 안에서 최고로 치는 경관을 볼 수 있는 '군산(群山)'이란 이름을 있게 한 4곳의 봉우리를 오르기도 한다.

도보여행 코스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선유도의 남악산 대봉이다. 선착장에서 내려 마을쪽으로 들다 보면 망주봉의 암봉 옆쪽으로 유독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가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대봉이다. 도보여행 코스가 개척되기 이전에는 아예 오름길이 없었던 곳이다.

지난해 가을 무렵부터 섬 주민들이 나서 길을 이었다. 30여년 전쯤 섬마을 아이들이 바다에 떠밀려 온 화약 따위를 줍느라 반대편 해안인 골안너머 쪽으로 넘나들던 능선길을 다듬었고, 이제는 사라져 버린 나무하러 다니던 거친 산길을 이었다. 그렇게 고군산군도의 최고봉이라는 대봉까지의 길이 놓였다. '최고봉'이라지만 해발고도는 160m 남짓. 다소 가파르긴 하지만, 오르는 데 30분이면 족하다.

오름길은 제법 초록이 짙다. 사철 푸른 잎들의 나무들이 있고, 길가의 풀섶에는 야생화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밀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산자락의 진달래들이 고운 분홍빛 꽃잎을 하나둘씩 터뜨리고 있다. 길을 개척하면서 매달아 놓은 노란 리본을 따라가다 보면 정상 부근에 이른다.

대봉 정상에서 가지를 뒤틀고 자란 소나무 아래에 앉으면 일대의 섬들이 모두 눈 안에 들어온다. 선유도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망주봉의 우뚝 솟은 암봉이 발아래로 펼쳐지고 그 앞으로 명사십리백사장이 펼쳐진다. 백사장은 앞으로는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를, 뒤로는 바닷물이 찰랑이는 갯벌을 끼고 있어 마치 얇은 띠처럼 백사장으로 선유2구와 선유3구마을을 잇는다.

고개를 들면 망주봉 뒤로는 무녀도와 그 너머의 부안 땅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신시도와 새만금방조제가, 오른쪽으로 돌리면 관리도와 그 너머의 수평선이 펼쳐진다. 여기에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소리와 노란부리도요의 쪽쪽거리는 울음소리까지 곁들여진다. 호수처럼 고요한 바다와 평화로운 섬마을. 훈훈한 봄바람을 따라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자욱한 해무. 이런 풍경 속에 앉아 있노라면 육지에 두고 온 번잡스러운 일 따위는 다 잊어지고 만다.

# 대장봉과 선유봉, 저마다 다른 풍경들

선유도 도보여행 코스에는 대봉 못지않은 경관을 빚어내는 곳이 또 한 곳 있다. 선유도에서 장자대교를 건너 다시 시멘트다리를 넘어서 당도하는 섬 대장도의 정상인 대장봉이다. 터무니없게도 '대교'란 이름을 쓰고 있긴 하지만, 장자대교는 차들이 오가는 우악스러운 다른 다리와는 사뭇 다르다. 장판지만 한 시멘트 상판을 잇대서 만든 다리는 차량은 아예 들어서지 못하고 보행자나 자전거 정도만 오갈 수 있다. 장자대교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섬이 바로 대장도다. 자그마한 섬 자체가 온통 바위산으로 이뤄져 있다.

대장봉으로 오르는 길은 마을끝의 포구쪽에서 시작한다. 타박타박 흙길을 걸어 오르면 초록으로 반짝이는 길섶에는 산자고가 온통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이 코스에는 아직 도보여행 코스임을 알리는 노란 리본이 매어져 있지 않지만, 기왕에 짧은 등산 코스로 이름난 곳이라 길이 뚜렷한 데다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대장봉으로 드는 초입에는 다 허물어져 가는 목조건물이 한 채 있다. '어화대'라 부르는데 무속인들이 찾아와 굿을 하거나 제를 올리는 곳이다. 무속인들이 숭배하는 대상은 바위산 끝에 뾰족하게 솟은 암봉인 '장자할미바위'다. 섬에 살던 할머니가 과거를 보러 간 할아버지를 기다렸는데, 낙방한 할아버지가 첩을 끼고 돌아오자 그만 돌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할미바위는 무속인들이 둘러놓은 붉은 천과 푸른 천을 마치 넥타이처럼 두르고 있다.

포구에서 대장봉 정상까지는 20분이면 넉넉히 닿는다. 가파른 바위로 이어진 짧은 구간이 있어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지만, 아이들도 그닥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대장봉에서 굽어본 섬의 경관은 대봉에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가까이 발밑으로는 대장도에서 장자도를 잇는 다리가 보이고, 장자도의 끝에서는 다시 선유도를 잇는 장자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는 무녀도와 일대의 섬들의 풍광이 병풍을 펼쳐 놓은 듯하다.

대봉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면, 이곳 대장봉에서는 섬사람들의 사는 마을이 더 가깝다. 포구에 매어 놓은 고깃배들이며 고기잡이에 나선 어선들이 조업하는 모습도 내려다보인다.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온통 짙게 밀려온 해무가 걷히길 기다리며, 정상의 너른 바위에 누워 그 평화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사이에 해풍에 밀려온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짙은 해무가 섬을 부드럽게 감쌌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마치 몽환 속의 세상처럼…. 봄날의 고군산군도를 타박타박 걷는 맛도 이와 같았다.

군산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 고군산군도 가는 길 = 서해안고속도로 군산나들목으로 나와 군산외항부두를 찾아가면 된다. 군산외항에서 하루 5번 선유도까지 여객선이 운항한다. 첫 배는 오전 9시, 마지막 배는 오후 4시30분이다. 군산항에서 선유도까지 쾌속선은 50분, 일반선은 1시간20분 소요된다. 차를 싣고 가는 페리호는 운항하지 않는다. 쾌속선은 편도 1만6500원, 일반선은 1만3500원. 군산외항 부근 노변의 주차구역에 차를 무료로 주차할 수 있다.

선유도 선착장에서 내리면 일대의 섬을 걸어서 돌아볼 수 있다. 민박집이나 거리의 대여점에서 자전거를 빌려 주기도 한다. 대여료로 하루 1만원을 받는다. 선유1구쪽 통계마을의 자갈 해변은 선유도에서 가장 호젓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구불8길의 전장은 25㎞ 정도. 앞으로 코스를 3개 정도로 나눌 계획이다. 1박2일 일정이라면 하루는 망주봉과 남악산 대봉쪽을 돌고, 이튿날은 장자도와 대장봉을 둘러보는 편이 좋겠다.

묵을 곳 먹을 것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맛볼까 = 선유도에는 민박은 물론이고 횟집을 겸한 펜션까지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예약을 하지 않더라도 피서철만 아니라면 숙소를 구하기 어렵지 않다. 굳이 선유도에서의 숙박만 고집하지 말고 장자도나 대장도 쪽을 찾아가면 더 운치 있는 숙소들이 있다. 숙소마다 전망이나 시설이 다르니 직접 눈으로 보고 선택하는 게 최선이다. 1박에 6만원 안팎으로 다소 비싼 게 흠이라면 흠. 횟집들은 대개 비슷비슷한 솜씨로 비슷비슷하게 음식을 내온다. 이즈음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도다리회와 노래미회. 한 접시에 5만~6만원쯤 한다. 주꾸미탕도 제철이다. 1㎏에 4만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