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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의 지진

hankookhon 2011. 3. 16. 22:12

왕조실록에 기록된 조선의 지진
`설악산 바위 무너지고 울산에선 물 솟구쳐`
  

`서울에 지진이 있었다. 경상도의 대구 안동 김해 영덕 등 고을에도 지진이 있어 연대(烟臺)와 성첩(城堞)이 많이 무너졌다. 울산부에서는 땅이 갈라지고 물이 솟구쳐 나왔다. 전라도에도 지진이 있었다.`

1643년(인조 21년) 6월 9일 인조실록에 나와 있는 한반도 지진 기록이다. 전국 각처에 대지진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사회가 큰 혼란에 휩싸였다는 사실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숙종실록에는 쓰나미(지진해일)가 강원도 지방을 강타한 기록이 상세하게 전해져 내려온다. 1681년(숙종 7년) 5월 11일 숙종실록에 묘사된 내용은 이렇다.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대한 바위는 모두 붕괴됐다. (중략) 이후 강릉 양양 삼척 등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조선)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지진에 대해 1533건이나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이 가운데 바닷물이 육지를 뒤엎은 쓰나미를 묘사하는 대목도 있어 한반도가 쓰나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추측을 뒷받침한다.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본 우리나라 지진 기록은 15~18세기에 집중돼 있다. 1565년 9월부터 1566년 1월까지 평안도 상원에선 100여 차례나 지진이 잇달아 발생했으며 1643년 울산 근처에서는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일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일어났다.

`삼국사기`와 `고려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779년 경북 경주 지방에서 민가의 붕괴로 100여 명이 사망했고, 1311년에는 고려 왕궁이 지진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지진 기록을 살펴보려면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www.history.go.kr)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원문과 번역문을 동시에 제공한다.

최범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조사연구실 연구위원은 15일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지진 기록 중에서도 물 피해를 동반한 쓰나미 현상을 묘사한 게 눈에 띈다"며 "한반도가 쓰나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진활동 자료는 1905년 인천에 지진계가 설치되기 전까지는 고지진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에서 묘사한 기록이 지진의 정량적 연구를 수행하기에는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