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요동...

hankookhon 2010. 11. 27. 22:43

 옛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 땅을 '요동(遼東)'이라고 불렀다.  그 지명이 지금도 '요녕성'과 '요하' 등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요(遼)'는 '멀다', '아득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요동'은 '아득하게 먼 동쪽'이라는 얘기다.  

어째서 중국 사람들은 고구려를 '먼 땅'이라고 불렀을까.  중국에서 고구려 쪽을 바라보면 너무나 아득하게 먼 곳이었기 때문에 '요동'이었다.  오늘날 유럽 사람들이 '극동'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의 수도인 북경(北京) 근처도 옛날에는 '유주(幽州)'라고 불렀다.  깜깜한 땅이라는 뜻이다.  그랬으니 유령이나 도깨비가 사는 곳이 '유주'였다.  자기들 땅이었다면 이렇게 '끔찍한' 이름은 결코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요동'과 '유주'는 애당초 중국 사람들의 땅이 아니었다.  자기들의 땅에 '아득하게 먼 곳'이나 '깜깜한 곳'이라는 이름을 붙일 리는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 바라보았을 때 아득하고 깜깜한 곳이 고구려의 '요동'이었고 '유주'였다.  땅의 이름만 보고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에게는 '요동'이 아득하고 먼 동쪽 땅이 아니었다.  국토의 중심부였다.  나라의 한가운데를 '머나먼 동쪽'이라고 불렀을 까닭이 없다.  고구려 사람들이 부른 이름은 '오열홀(烏列忽)'이었다.  '오리 고을'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리 고을'은 수도인 평양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우리 민족의 한 갈래인 여진족은 청나라를 세우고 이 '요동'을 '만주'라고 했다.  일제가 '만주국'을 세우기도 했다.  만주에서 일어난 청나라는 중국 전체를 수백 년 동안 지배했다.  일제도 '만주국'을 세우더니 중국 전체를 차지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만주'라는 표현을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악착같이 '뚱뻬이(東北)'라고 부른다.  '동북 3성' 운운하고 있다.  힘이 좀 생기더니 자기들 것으로 굳히려고 이른바 '동북공정'까지 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우리도 같이 불러줄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되레 한술 더 뜨고 있다.  '요녕'을 아예 중국 발음으로 '랴오닝'이라고 하고 있다.  '북경'을 '뻬이징'이라고 부르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비가 있는 '집안'은 순우리말이라고 하는데, 그마저 '지안'이라고 하고 있다.  

언젠가 TV 사극에서는 고구려의 군사들이 '요동성'을 수비하고 있었다.  TV 화면에는 '遼東城'이라고 한자로 쓴 현판까지 달아놓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이 붙여 놓은 '요동'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찬란했던 고구려 역사를 조명,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우기 위해 기획했다는 사극이었다.  우리는 친절하게도 '동북공정'에 협조해주고 있는 셈이었다.